목차
1. 푸틴의 전쟁 담론과 두긴 철학의 접점
2. 본론
2.1. 알렉산드르 두긴의 제4정치론과 유라시아 전략
2.2. 푸틴의 '제한적 군사작전' 개념화 과정
2.3. 우크라이나 전쟁의 철학적 기반: 탈서구화 vs 신제국주의
2.4. 군사전략과 지정학적 목표의 상호작용
3. 유라시아주의 실현을 위한 전쟁의 역설
1. 푸틴의 전쟁 담론과 두긴 철학의 접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순한 영토 분쟁을 넘어 문명적 충돌의 성격을 띤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표명한 '특수 군사작전'의 개념은 서구적 가치 체계에 대한 근본적 부정에서 출발한다. 이 담론의 토대에는 알렉산드르 두긴이 주창한 제4정치론과 유라시아주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두긴의 사상은 푸틴 정권이 표방하는 '다극적 세계질서' 구축 전략과 깊이 연결되며, 특히 우크라이나를 서구의 영향권에서 분리해 유라시아 블록에 편입시키려는 전쟁 목적을 설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본고는 푸틴의 군사적 행보를 두긴 철학의 프리즘을 통해 해석함으로써 현 전쟁의 이념적 토대를 규명한다.
2. 본론
2.1. 알렉산드르 두긴의 제4정치론과 유라시아 전략
제4정치론은 자유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을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서구 근대성의 보편주의를 거부한다. 두긴은 이 이론에서 러시아 정교회 전통과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결합시켜 서구적 합리주의에 대항하는 '유라시아 문명'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유라시아 블록 형성은 미국 주도의 단극적 세계질서를 붕괴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유라시아 전략의 핵심은 구소련 영토를 기반으로 동유럽,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초국가적 연합체 구축이다. 이는 NATO 확장을 저지하고 러시아의 지정학적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기반으로 작용한다. 푸틴 정권이 2014년 크림반도 합병부터 2022년 본격적 침공까지 일관되게 유지해 온 행보는 이러한 두긴의 청사진을 현실 정치에 투영한 결과다.
2.2. 푸틴의 '제한적 군사작전' 개념화 과정
푸틴은 우크라이나 작전을 '전면전'이 아닌 '특수 군사작전'으로 규정하며 세 가지 핵심 목표를 제시했다: 탈나치화,비무장화,중립국 지위 확보. 이는 표면적으로는 지역 갈등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질적으로는 두긴이 주장한 '제4정치론의 실전 적용'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2022년 2월 24일 침공 연설에서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역사의 불가분의 일부"라며 문화적,종교적 동질성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영토 확장 논리를 넘어 유라시아 문명권 회복이라는 두긴적 사고에 근거한다. 또한 작전 초기 단계에서 키이우 점령 시도를 감행한 것은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이 성공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2.3. 우크라이나 전쟁의 철학적 기반: 탈서구화 vs 신제국주의
전쟁의 이중적 성격은 두긴 사상의 모순적 측면을 반영한다. 한편으로는 '탈서구화'를 내세워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저지와 서구 자유주의 가치 배제를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 중심의 신제국주의 질서 구축을 추구한다. 이러한 모순은 제4정치론이 서구 패권에 대항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틀로 기능함에서 기인한다.
2025년 3월 현재, 푸틴 정권이 제시한 휴전 조건(4개 주 영구 할양,군축,중립국 선언)은 표면적 평화 제의처럼 보이지만 실질적 항복 요구다. 이는 두긴이 주장한 "전쟁 지속이 서구 정치기계의 등뼈를 꺾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논리와 정확히 부합한다.
2.4. 군사전략과 지정학적 목표의 상호작용
러시아 군사작전의 단계적 확대는 두긴의 '유라시아 블록' 구상과 연동되어 전개됐다. 도네츠크, 루한스크 인민공화국 승인→크림반도 합병→4개 주 병합이라는 과정은 점진적 영토 확장을 통해 유라시아 경제권을 재구성하려는 전략이다.
군사적 성과와 정치적 목표의 간극이 커지자 푸틴은 2023년 12월 기자회견에서 "목표 달성 전까지 평화 불가능"을 선언했다. 이 발언은 군사적 승리 없이도 서구의 지리적 확장을 차단하면 유라시아주의 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두긴의 원론적 주장과는 차이가 있으나, 현실 정치적 타협의 필요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3. 유라시아주의 실현을 위한 전쟁의 역설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두긴 철학이 현실 정치에 미친 영향을 입증하는 사례다. 그러나 군사적 강제력에 의존한 문명권 재편 시도는 내부적 모순을 노정한다. 유라시아주의가 표방하는 다극적 세계질서 구축이라는 목표와 달리, 전쟁 장기화는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며 역설적으로 미국 주도의 단극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철학적 이념과 현실 정치의 괴리는 푸틴 정권이 전쟁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딜레마로 이어진다. 2025년 현재 전선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두긴이 경고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휴전"이라는 주장과 푸틴의 실용적 대외정책 사이에서 러시아 지도부의 전략적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