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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얼굴: 샤르바트 굴라의 초상과 삶을 통해 본 전쟁의 비극

by rainbowwave 2025. 4. 22.

 

목차

1. 서론: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전쟁의 얼굴
2. 본론
       2.1. 사진 속 응시: 샤르바트 굴라의 시선이 드러내는 심연
       2.2. 인도주의의 역설: 난민의 삶과 국제사회
       2.3. 기억의 정치학: 미디어 재현과 서구적 응시의 권력
       2.4. 존재로서의 상징: 굴라의 삶이 전하는 역사적 진실
3. 결론: 샤르바트 굴라, 인류의 기억이 된 이름

 


< 1984년과 2002년 샤르바트 굴라의 사진, 그리고 사진가 스티브 맥커리>

                               < 1984년과 2002년 샤르바트 굴라의 사진, 그리고 사진가 스티브 맥커리>

 

 

1. 서론: 한 장의 사진이 증언하는 전쟁의 얼굴

 

1984, 미국의 사진작가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는 파키스탄 페샤와르 난민캠프에서 아프가니스탄 소녀 샤르바트 굴라를 만났다. 붉은 히잡을 두른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그 사진은 다음 해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표지에 실려 전 세계의 상징이 되었다. 이 초상은 단순한 인물 사진을 넘어, 전쟁의 잔혹함과 난민 문제의 복잡성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시각적 증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이미지가 미학적 감상에 머무를 때 시작된다. 사진 속 굴라의 삶은 오랜 세월 동안 망각되었고, 그녀 자신은 그 유명세 속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굴라의 초상을 단순한 아이콘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삶과 그 배경이 지닌 역사·사회적 함의를 통해 전쟁의 비극을 비평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2. 본론

2.1 사진 속 응시: 샤르바트 굴라의 시선이 드러내는 심연

 

샤르바트 굴라의 눈동자는 단순한 인물의 정서를 넘어서,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감정을 압축한 응시로 해석될 수 있다. 그녀의 시선은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면서도 동시에 방어적인 긴장을 담고 있으며, 이는 강제 이주, 폭력, 빈곤의 체험이 응축된 결과로 보인다.

그녀의 시선은 수동적 대상이 아닌 능동적 저항의 시선이다. 이러한 해석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감시와 처벌에서 언급되는응시의 권력을 역전시킨다. 사진 속 굴라는 단순히보여지는 자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응시하는 자로 존재한다. 그 응시는 세계의 무관심에 대한 무언의 고발이며, 동시에 인간 존재의 고통을 증명하는 증언이 된다.

 

* 응시(Gaze)는 시각예술 이론에서 권력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존 버거(John Berger)와 라우라 멀비(Laura Mulvey)에 의해 발전되었다.

 

2.2 인도주의의 역설: 난민의 삶과 국제사회

 

굴라의 삶은 국제사회가 전쟁 난민을 어떻게 대상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그녀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피난하였다. 사진이 촬영된 후 수십 년간 그녀는 사실상 신분 없이 살아갔으며, 2016년 파키스탄 정부에 의해 위조 신분증 사용으로 체포되기까지 공식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은 인도주의의 실천이 얼마나 선택적으로 작동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제사회는 사진 한 장에는 감동했지만, 그 이미지 뒤에 존재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기력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와 같은 조직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의 실제 생활 조건은 체계적 무시와 폭력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이중성은 국제 인도주의 담론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게 한다. , ‘구호의 이미지는 소비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과 권리는 쉽게 무시된다.

 

* 인도주의(Humanitarianism)는 비정치적이고 중립적인 도움을 추구하나, 실제로는 지정학적 이해와 종종 충돌한다.

 

2.3 기억의 정치학: 미디어 재현과 서구적 응시의 권력

 

샤르바트 굴라의 사진은아프간 소녀라는 제목으로 통용되며, 그녀의 개인사는 삭제된 채 이미지가 재현되었다. 이는 서구 미디어가 전쟁 피해자를 재현할 때 반복하는 대표적 서사 구조이다.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기까지는 17년이 걸렸고, 그 사이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미디어의 이 같은 재현 방식은타자화(Othering)’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서구적 응시는 그녀를 고유한 인간이 아닌 전형적 피해자로 표상함으로써, 전쟁과 난민 문제를 구조적 맥락이 아닌 감성적 접근으로 환원시켰다. 이는 식민주의적 시선의 연장이며, 서구적 규범을 세계 보편으로 내세우는 문화적 헤게모니의 발현이다.

 

* 타자화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우리와 구별되는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사회적 위계를 만드는 담론적 행위이다.

 

2.4 존재로서의 상징: 굴라의 삶이 전하는 역사적 진실

 

샤르바트 굴라는 단순한 사진 모델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를 살아낸 주체적 존재이다. 그녀의 삶은 아프가니스탄의 근대사가 가진 내전, 외세의 개입, 여성 억압, 문화 정체성 등의 총체적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수차례 강제 이주를 겪었고, 파키스탄에서의 체포 이후 아프가니스탄으로 송환되었으며, 다시 이탈리아로 망명하였다.

이와 같은 반복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는 정주 개념에 기반한 국가체계가 난민과 같은이동하는 타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구조적 결함을 지적한다. 굴라는 더 이상 개인의 비극에 머무르지 않으며, 전쟁과 난민, 여성, 종교, 국가주의라는 주제를 연결 짓는 상징적 존재로 기능한다.

 

3. 결론: 샤르바트 굴라, 인류의 기억이 된 이름

 

샤르바트 굴라의 초상은 이제 단순한 시각적 기록이 아니라, 전쟁의 비극과 그로 인한 인간 조건의 복잡성을 증언하는 역사적 문서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녀의 삶은 전쟁이 남긴 상흔을 입증하는 산 증인이며, 동시에 국제사회의 무책임한 인도주의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요구하는 상징적 거울이다.

굴라의 초상은 우리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 그리고 그 기억이 누구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구성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녀는 이제 세계사 속 익명의 난민이 아닌, 인간 존엄성과 정의에 대한 담론을 촉발시키는 살아 있는 증언이 되었다.